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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인더 필름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관능의 법칙>


1994년 발표해 50만부가 팔린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 
그녀의 페이스북 발언이 정치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중입니다.
이 포스팅은 최영미 시인을 비난하기 위함은 당연히 아니에요.
논란의 내용을 조금 살펴 볼께요. 정부 보조금으로 힙겹게 생활하는 그녀가 현재 살고 있는 월세 집의 주인에게 방을 비워 달라는 통고를 받고서 힘든 감정을 추스리고자 쓴 내용이 발단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시인 도로시 파커처럼 호텔방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로망을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요.하지만 이게 빌미가 되어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이 시작돼더니 생뚱맞은 갑질논란으로까지 이어져 언론에서는 현재 그녀를 마녀사냥식으로 몰아 부치며 발빠르게 기사 재생산에 열일중입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생략>  
이 시의 제목으로 인하여 문득, 김광석의 정규 4집 앨범에 수록된 <서른 즈음에>란 곡이 생각났습니다. 원곡자 강승원씨의 곡이지만 이보다 김광석씨의 리메이크곡이 유명합니다.(안타깝지만 요즘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개봉으로 인해 고인이 되신 그의 자살을 두고 타살여부의 논란이 생긴 상태입니다.)

가장 최근의 리메이크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시즌4> 출신의 로이 킴이 <불후의 명곡>에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핏 들어 보신 적이 아마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서른 즈음에> 라는 이 노래. 그 원제목이 '마흔 즈음에'였다...,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요.


상업적 의도에 의해 전략적으로 임의로 수정됐다는 이야기, 혹시 들어 보셨나요?
작사, 작곡의 원곡자 강승원의 연령이 그 당시 30대 중반을 넘어가는 시기여서 이 풍문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래는 《마흔 즈음으로》라는 제목을 가졌으나 당시 음반을 실질적으로 구입해서 듣는 팬층이 20~30대임을 알고서 그 연령대를 효과적으로 공략, 판매실적을 최대한으로 올리고자 마케터가 이 《마흔 즈음에》라는 제목을 《서른 즈음에로 바꾸었다는 설입니다.
이와 유사하지만 풍문이 아닌 실제 팩트인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 개봉한 엄정화, 문소리 주연의 관능의 법칙이라는 영화는 극중에서 40대 동갑내기 세 친구인 여성의 삶 - 연애, 결혼, 성생활에 대한 소동극이지만 당선된 시나리오의 원래의 키워드는 50대 중년 여성의 삶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주된 관객층과 흥행을 의식해 이 영화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50대에서 40대로 낮추어 설정 한 것입니다. 
뭐, 결과적으로 흥행결과는 그리 좋지 못합니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우리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문학, 대중가요, 영화가 상업적인 전략에 의해 의도적으로 꾸준히 대중을 속여 왔다는 사실이죠.
왜 그럴까요? 간답합니다. Show me the money! 
대중들의 호주머니 털기 위해서 말이죠. 
우리가 예술이라 인정하는 문학조차도 철저하게 시장의 니즈를 파악하여 가공된 아이돌의 노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게 슬픈 진실입니다.

<서른 즈음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제목이지만,과연 우리 인생이 디지털 숫자처럼 딱딱 떨어지는 '십진법'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서른이니 마흔이니, 틀에 박힌 수학 공식마냥 거기에 어거지로 짝을 맞추고 허무를 느끼고 우울하고 공허함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같은 판타지 영화를 보고 실제와 혼동하지 않듯이 대중 문화도 그런면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다소 거리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뒷편에 감춰진 다른 진실, 마케터의 속내도 꿰뚫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0대, 청춘의 단어, 단지 젊음이라는 이유로 어떤 나이때보다 빛나고 즐거운 것의 표상으로 매스 미디어나 문학, 철학에서 전달하고 환상을 부추기지만 그것 또한 엄청난 기만입니다.
물론 김광석의 오리지널 노래들은 가사 하나하나, 그의 가성이 진심을 담고 있긴 합니다
아뭏든 작년의 국정농단같은 터무니 없는 일에도 당연히 분노해야 겠지만 얌체같은 자본주의 마케팅 농단(?)에도 속지 말아야 겠습니다.
두눈 부릅뜨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네요. 

최영미 시인에 대한 비판아닌 비정상적인 행태의 비난보다도 다른 중요한 이슈는 많습니다.
3년전에 개발완료된 북핵의 고도화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한반도.코리아 패싱이 거의 확실시 되는 듯한 묘한 분위기죠.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우병우 전민정수석의 무능과 전횡이 시시각각 들어나고 있고요.
진경준 검사장의 네이버 갑질 횡포. 공짜 주식이 뇌물이 아니라죠? 법리를 떠나서 일반상식으로는 이해 불가능하네요. 판사들의 직무유기가 아닐까요?
요사이 다른 굵직굵직한 이슈들도 많은데 굳이 그녀에게 떼로 몰려가 비난을 하는게 가당키나 할까요?
그것은 비판이 아닙니다. 무책임하고 원색적이며 유의미하지 않은 그것은 폭력입니다. 선정적인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들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