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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TV

천원으로 불행을 탕진하는 법


천원으로 불행을 탕진하는 법.
    - 욜로와 탕진잼, 가난한 사치에 대하여.
            신동엽의 <고수외전>중에서.


적은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누리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인형뽑기.
홍대에는 하나의 건물 전체가 인형뽑기방이 있다고 한다.
무려 순수익이 7~8천만원이다.
이유를 따져보면 인건비가 없거나 거의 따로 들지 않는다.
또한 무엇보다 카드결제가 없다.
오로지 현찰장사라는 거다. 굉장한 프리미엄.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인형뽑기에 탐닉할까? 
어차피 그 많은 인형 뽑아서 어디 쓸데도 없는데...

첫째, 인간의 쾌락 때문이다라는 근거 -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이 즐겁다)라는 이론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유용하다.

*주의사항- 맨 정신에는 괜찮은데 위험요소가 있다.
오후 늦은 시간 자신이 음주상태이거나 여친이나 이성과 함께 있을때 주의해야 한다.
승부욕이나 남자의 자존심이 이성을 무장해제 시켜 가진 현금 다 털릴수 있다.
만원이 호주머니에서 사라지는 건 10분도 채 안 걸릴거다.

더군다나 인형하나 뽑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



출처 : KBS 미녀들의 수다.


뭔가 못난 사람, 패배자? 루저가 된 기분일거다.

동의어로 '가난한 사치'라는 모순어법의 단어가 있다.

두번째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집중, 정화되는 시간이다.
명상효과와 같다고 한다.
이 인형뽑기방은 노량진 고시촌에서 활성화돼서 유래된거라고 한다.
무료한 주입식 암기공부에 지친 고시생들에게 잠깐이나마 즐거움을 준것이다.
그것이 유래가 돼서 홍대앞까지 진출한거다.

왜 뽑기가 사치로 표방되어 행복이 될까?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기도 하지만 폐해도 있다.
하루에 몇십만원을 쓰기도.

셋째. 몰입과 즐거움도 있지만 그곳은 평등의 세계다.
이 세상은 불평등하다.
개인이 돈과 권력, 재력을 쉽사리 극복 할수 없지만
뽑기의 방-카지노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거기서의 결과는 일종의 운이니까 평등함의 세계를 잠깐이나마 경험하는 것이다.

넷째. 인생이 걸려있는 자신의 공부나 일을 하루종일 하면 당연히 피곤하다.
쓸데없는 짓이 자신에게 힐링을 준다.
행운! 내 인생에 다신 없을 것 같은 자그마한 행운이 찾아온 기분.
단독 2000원 썼는데 만약에 커다랗고 귀여운 인형을 득템했다면
나는 작은 기적을 체험한거다. 그 쾌감, 즐거움- 일말의 가능성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때문에 중독이 될수 밖에 없는거다.


-낚시와 인형뽑기의 공통점



1.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2. 어떤 것이 뽑힐지 모른다, 그래서 설레인다.
3. 뽑을때 혹은 낚을때의 쾌감이 있다.



또한 '나성비'라는 개념도 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확고한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라 한다.
성취감을 가져오는 행복감(?)을 맛보려고.


"욜로"라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의심해야 한다.
자포자기의 긍정적 의미다. 자포자기의 가면을 쓴 단어이다.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삶이 불가능한 현실이 될때 차라리 그보다 작고 가능성 있는 목표에 집중해 즐기자는 의미도 된다.
다른 한편의 이유는 현대인을 지배하는 것은 광고의 전략이다. 광고 마케터들의 작품일수밖에 없다.
오늘밖에 없는 것 처럼 써라, 소비하라는 선동에 가깝다. 지름신과 같은 근거와 핑계를 준다.

하지만 슬프게도 불행한 현대인은 무언가 줄여서 여유를 찾기보다 경험을 더 늘려 행복을 느끼려 한다.

바쁨, 바쁨, 오로지 바쁨.
한국인의 강박증, 결코 쉴줄모르는 무지함,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모르고 대세, 트렌드가 되어버린 욜로가 나를 집어 삼킨다면 또 털리는 거다.


중요한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 전제는 삶이 바뀌어야 한다.
욜로로 세계여행을 했다고 치자. 일상으로 돌아왔을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고수는 양양에서 조그만 샵을 하는 서퍼들과의 대화에서 크게 배웠다고 한다.
"돈은 버니?"
"못 벌어요"
"어떻게 사냐?"
"별로 쓸데가 없어요" - 이것과 같은 깨달음이 본인자신만의 정답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게 중요하다.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는 사람인지 아니면 누가 뭐래든 자신의 행복이 중요한 사람인지를 아는게.

목표가  잘못 설정되었으면 이건 답이 없다.
계속 만족할지 후회될지 해법이 없다.

양양의 사람들의 예로 다시 돌아가면, 만약 서핑때문에 그들이 이전 삶을 포기했다면 서핑이 지겨워진 순간에 그 사람들은 그 선택을 후회할것이며 한 인간의 삶은 지옥으로 바뀔거다.

하지만 서핑때문에 선택한 삶으로 우연하게도 그렇게 살아보니 도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깨달은 거다.
가난해져보니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물건이 나에게 별로 필요하지 않단걸 깨달았다는 명언과 같은 맥락이다.
삶이 바뀌어야 선택이 옳은거다.
나의 욕망을 제대로 모르고 비싼 집을 좋아하는 내가 그집을 팔고 여행을 다녀온다면 (맹목적으로 욜로를 즐겼다면)
그 결과로 그 사람의 인생에는 허무함과 후회만 있다.

철학자 탁석산 고수의 반론: 
한번 단 하루만 사는 인생이 아나다, 혼자사는 인생이 아니다.
그런 인생은 고립되고 쓸쓸히 죽을 수 있다.
인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생업이 되고 현실로 가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다시 김태훈고수의 반론:
사람들이 욜로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흔히 얘기하는 도시의 평범한 삶을 유지한다고 과연 우리의 노후가 보장이 될까?
불안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차피 늘 불안하다. 
서점에서 퇴사하는 법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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